Sincero
어떤 가정인데…, 본문
자네는 나 죽으면 어쩔건가?
그런 질문 받은 일은 전쟁 전후로 죄다 드물었으므로 그저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전쟁 전후에 그런 질문 받은 일 희박할 저 참전 군인은 꼭 전쟁터에 서 있을 때처럼 물었을 뿐이다. 그는 익숙하게 사후 처리 과정을 떠올린다. 가능한 경우에, 물 위에 뜬 사체 건져내어 정말 죽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견장과 은 나침반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경우 이름과 직급을 호명하며 청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시 맥박, 호흡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한다. 사망을 재확인하면 신원 확인에 도움될만한 장신구를 포함한 신체 특징은 가능한 한 확보하고 기억한다. 이후로는 선내에서 사망한 병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록과 대조해 본인 확인한 사체는 일괄 수장하며 장물은 거둬 본토로 송환한다. 하루가 지나도 확인 불가할 경우 마찬가지로 수장한다. 그리고 도무지 거기에 영웅의 얼굴을 맞춰 넣지 못한다. 그는 전쟁에서 죽지 않았고 그랬다 한들 바스티온이 그 시체를 직접 볼 일은 없었을 것이다.
안 믿을 것 같습니다.
그러면 탄 적중할 일 없을 때 그랬단 건데 그건 더더욱 가늠할 수 없다. 마차, 무너지는 건물, 흉기를 든 강도 같은 건 도무지 단련된 군인을 죽일 수 없을 것만 같다. 그리고 물론 그것들은 영웅을 죽여선 안 된다. 제 것도 아닌 보상 심리라 더 뻔뻔하게 작동한다. 그런데도 죽었다면 반 이상은 이든 블레이크의 본위가 섞였을 것이다. 본인의 동의 없이 죽지 않을 것이고 그래서 바스티온은 이든이 늘상 반쯤 죽어있는 상태라고 새삼 깨닫는다. 상상은 조금 더 쉬워진다. 자리에 눕는 일도 없이 서서 군복 자락 휘날리며 웃던 이든 블레이크는 어느새 흰 침대 위에 가지런히 누워있다. 이 웃음은 좀 더 산뜻하고 가볍다. 대관절 무슨 이유인지는 알 수 없으나 기어코 죽은 모습을 상상하고 말았다면 다음은 죽은 이의 본인 확인이다. 영웅의 얼굴은 일개 군인보다 일리아스와 아르칸테가 더욱 잘 알겠지만 배우자에게 신원 확인을 받는 것은 적법하고 인도적인 절차다. 확인 정도는 해야 할 관계라는 거지. 물론이다. 어쩌면 병일지도 모르지. 이든 블레이크는 병으로 죽는다면 원인을 특정하기도 어려울 정도로 많은 것들에 스스로를 내던진 채 살아왔다. 언제 무슨 선고가 내려진대도 이상하지 않다. 병동에 오래 앉아있는 기간을 상상하기도 갑자기 쉽다. 간이 의자에서 들이쉰 호흡 한 번에 비탄이 찬다. 이유를 알 수 없다. 쓸어 보낸다. 다음 호흡에 생이 차올랐다 쓸려가고 다시 애수가 들어찬다. 쓸어 보낸다.
울…
파도에서 막 뭍으로 내려선 사람처럼 걷는 듯하다. 눈앞은 어둡다. 선고, 라고 하면 도무지 병동에서의 선고만 떠오르는 것은 아니라 숨, 을. 끊어. 쉰다, 당신이 늘 그래 왔듯이…. 끝내 뭍에서 수몰할 성 싶다.
겠죠. 잠깐은.
뱉은 말에 대한 스스로의 당혹은 짧다. 가정이 당혹을 밀어내고 파도보다 세차게 들이찬다. 하지만 감히 영웅, 그저 군인, 바다 좋아하는 소녀, 그보다는 푸른 장미를, 그 이전에 제 어미 아껴 물 밟던 애를, 그래서 결국 영웅으로 올라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게 있기나 하겠나. 맹세 않더라도 세상천지가 감히 겨우살이같이 되어 그를 찌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죽는다면, 거기에 어느 정도 그의 의지가 포함되어있다면, 대관절 어째서 그래야 했느냐고 도리어 제가 억울해지는 것만은 어쩔 수가 없다. 마차, 무너지는 건물, 흉기를 든 강도, 병증과 어떠한 심판 따위, 더불어 다시 벌어져서는 안 될 전쟁 따위가 당신을 죽일 수 있다고 가정하면 속절없이 숨이 막힌다. 멈춘 손이 다시 마른 옷가지를 갠다. 한 번 시작된 상상은 끝을 모르고 내달린다. 온갖 부상을 다양한 방식으로 단 이든의 죽은 몸이 몇 번째인지 세기를 끝끝내 관두지 못해 견딜 즈음에 그는 다음 죽음이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직감한다. 최후의 보루, 본 일 없고 볼 일 없을, 그것을 물기 어린 손으로 뒤집을 일 만들기 전에 바스티온은 짐짓 소란스럽도록 갠 옷 위를 다듬는다.
그런데 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
모바일용 전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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