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o
바스티온 M. 블레이크 본문
[ 육지에 내린 닻 ]
사랑하는 바다에서 죽는다면 그야말로 호상이 아니겠냐며 웃는 소리들 사이에서도 끝끝내 바다에서 죽으리라 말한 일 없다. 끈질긴 목숨 믿지 않으나 모두가 곧잘 사랑하고 마는 바다 품이 단 한 번도 몸 뉘일 곳 아님을 안다. 거기서 누구 대신 총 맞더라도 질긴 숨 이어붙여 육지 닿거든 숨지리라 내 아끼고 나 아끼는 이들 품으로 돌아오는 일을 숙명으로 삼으리라 그래서 육지. 내 몸에 줄 감아 너희 목숨 끌어내리라 해서 비로소 닻. 그러므로 있을 곳 아닌듯 한 자리에 뿌리내리더라도 그것이 도무지 짐이나 버거움이나 고통이 되선지 안못 될할 것임을 그가 알아,
❝ 어때, 닻으로 기능하는 것 같나? ❞
농이야. 긴장하라고 한 말 아니다.
인장
픽크루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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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관
오래 쓰인 닻이 그러하듯 긁힌 자국이 파다하다. 보이는 곳에는 거의 없다. 유지 보수 또한 뱃사람의 일이다. 잔 흉터가 많으나 큰 것은 오른 발등의 관통상, 왼 허벅지 바깥의 총상과 그 위의 절상. 옆구리에도 눈에 띄는 상처가 있긴 하지만 내장이 상했을만한 깊은 흔적은 없다. 전부가 옷가지로 가려진다. 왼 팔의 절상이 가장 깊고 그 다음이 왼 눈 아래의 짧은 자상이다. 오른 볼을 길게 찢은 상처와 더불어 눈 아래의 것들은 반창고 붙여 가리고, 오른 눈 위를 가로지르는 긴 절상은 앞머리 내려 가렸다. 그래서 보이는 상처라고는 간혹 반창고 바깥으로 삐져나오는 상처 끄트머리, 그리고 제압에 못이겨 난자당한 손바닥 정도다. 가만히. 귀관 상처 봐주다가 내가 다치면 그게 무슨 주객전도인가. 목소리에는 의무실에 흔한 알콜향, 참전 군인에게 흔한 불내음, 그 둘 모두에게 흔한 핏물 닮은 쇳내음, 그런 것은 전혀 없고 다만 나무의 냄새가 난다. 그게 또 파도와 소금에 절어있는 갑판의 향은 아니고 햇볕에 잘 마른 나무. 이미 베어 넘겨진.
탁한 라임같은 눈을 제외하면 색채를 빼앗긴 듯 하얗고 검다. 그리고 제복 덕에 어둡게 푸르다. 내버릴 수 없어 온 몸으로 지고 선 명예와 의무들이 그 지위를 증명하는데도 여전히 짓눌려 쓰러지는 일 없이 단정하고 곧다. 나무 몇 그루 쯤 베어진다고 숲이 죽진 않으니까. 뼈를 취할 수 없더라도 살을 내어주는 일에 익숙하다. 다를 바 없이 정돈된 얼굴은 늘 제법 웃고있으나 유달리 그리 보는 이가 적다. 이래저래 크게 웃는 이들이 주변에 많은 탓일 수도 있다. …고, 그는 말한다만 피곤한 듯 살짝 찡그린 인상은 신병에게도 익숙하다. 예의 차려야 하는 곳에서는 반창고도 떼고 머리도 넘기니 죽죽 긁힌 얼굴이 한층 궂어진다. 본 얼굴이 유한 편이라 성격 나빠보이진 않는다. 증명하듯 외근이랍시고 견장과 훈장 보이지 않게 제복 뒤집어 들면 술자리에서는 시비 걸리기 일쑤다. 그런 꼴로 나설 때에 정복 차림에 익숙한 부하들이 머뭇대면 쉽게도 웃어보인다. 외근이잖나. 괜찮아.
그런데 정말, 가로로 쭉 뻗은 눈썹이나 날카로우나마 아래로 조금쯤 쳐진 눈꼬리, 얇진 않은 입매가 늘상 기어올라간 걸 보면 잘 웃는 상인데도 이상할 정도로 무감한 낯으로 기억된다. 아마도 장신구며 문신의 흔적은 거의 찾아볼 수 없이 말끔한 몸 때문에, 상처는 그렇게 많은데 찔려도 무릎 하나 꿇지 않았을 법 하고 않을 것 같은 모양새 때문에, 그 직책을 달고도 무슨 습관처럼 빼놓지 않는 광장 지킴이 노릇은 시작했다 하면 도무지 사람같지가 않고 깊게 박힌 나무, 무게 짙은 쇳덩이, 잘못 놓인 석상 뭐 그런 걸로 취급할 수 밖에 없는 꼴로 서는 일 때문에 그럴 것이다. 농담을 하면 도무지 농담으로 들리지 않고 가장 쉬운 농담이라는 게 귀관도 미숙하게 굴다가 머리 대신 팔 달아나지 않게 조심해라 그런 것들이라 참전 군인들은 농담 스위치가 어딘가 고장난 거 아니야? 하는 편견만 짙게 얹어준다. 게다가 웃으란건지 말란건지 알 수 없는 농담에 그 낯에서 시선 떼어내고나면 옷 위로 간혹 더듬어쥐는 로켓 목걸이며 왼손 약지의 반지와 더불어 그가 끌어다 쥔 이름이,
이름
바스티온 M. 블레이크 / Bastion M. Blake
그래. 블레이크. 일리아스와 떼어놓을 수 없는 그 이름을 제 힘으로 갖다붙였다는 뛰어날 것도 없을 군인인 것 때문에. 미지는 곧잘 경외가 된다.
나이
33(+a)세
성별
남성
키/체중
184cm/83kg
잘 못 먹을 전쟁 때에 용케도 자란 키로 벌써 열댓 해를 훌쩍 넘겼다. 더 클 성 싶지는 않다. 일선에 나설 일은 없는데도 일상에서의 단련에는 도가 터 여즉 건장하다. 퇴역 않는 한 그럭저럭 유지하겠다.
소속
일리아스
970년 창설 직후 입대한 것 치고는 되레 승진이 느린 것 아닌가? 그래서 해군에 세 번째로 생겨난 블레이크를 아는 이들은 그 이름 늘어날수록 참 별 볼일 없어진다는 말도 떠든다. 말 전해 준 이들이 괜히 공분하면 그는 그들을 달래보다가 결국 가장 쉬운 응대를 택하는데, 방법은 이렇다. 그 치도 승진은 글렀군. 전황 보는 눈이 그리 없어서야. 즐기라는 듯 제 잘난 체를 하고 그네들 웃는 꼴을 본 후에야 다시 일 처리로 돌아간다. 오래 전 같은 함선 탔던 이들이 진작 함선 하나 씩은 맡을 직책 단 와중에 그에 대해 깊이 알아보려는 생각도 없이 헐뜯는 이들만 그런 소리를 하니 신경쓰지 않는다. 조만간에 근속 스무 해를 채우는 이 참전 군인은 제 소중한 이들 지켜보겠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남이 언질만 준 방향 향해 무작정 걸음 옮겨 입대하여, 거기서 꾸역꾸역 늘어난 아는 얼굴들을 두고 후방으로 움직이는 일은 할 수 없어 몸 낮춘 채 자리 지키다가 결국 종전 후에도 원사였고 능력 과소평가 되길 스스로가 너무 바란 탓에 주변 그 누구도 그 등 떠밀어 올릴 수 없었는데 결국 모종의 -혹자가 보기에는 비리같고, 혹자가 보기에는 도무지 그것보다 멍청할 수가 없는- 이유로 소위까지는 겨우 걸어오른 녀석이고. 그러니까 일리아스는 그 정신나간 놈의 사랑만 없었으면 본인에게 별 도움도 안 되는 축제 놀음에 열 몇 해를 내리 끼어드는 현장 경험 짙은 군인은 또 얻지 못했으리라는 것도 알아야 할거고….
계급
소위
그렇게 됐어. 하는 소리가 남들이 가장 많이 들었을 설명이다. 명령에 굽힐 녀석도 아니고 명예욕에 불타는 녀석도 아니고 먹고 살기가 빡빡하거나 해서도 아닐테고. 십 년을 이리저리 몸 비틀며 미루던 승진이 도대체 어쩌다 이뤄진거냐니까!? 블레이크 원사는 너무 하잘것 없지 않나. 그래도 빚어두신 이름이 있는데…. 그러니까 결혼이 먼저인지 승진이 먼저인지는 차지하고 그 말이 대체 누굴 향한 것인지도 알 수가 없으니 원.
물론 이제는 정말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인 것도 맞다. 제 고집 여러 개, 그 중 몇 가지들을 슬슬 청산해가는 중이다. 다른 말로는 사람 되어가는 중이라고도 한다.
특성
불사신
바다에서는 죽을 수 있었던 적이 없었지.
성격
알기 힘들긴 한데 그렇게 깊게 생각할 필요 없어. 되도않는 큰 잘못만 안 하면 무해한 사람이거든.
고집쟁이 | 말 수 적은 | 뿌리깊은
술집에서 목소리 높여대며 싸우는 군인들은 태반이 총소리며 대포소리에 반쯤 귀 멀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중 누구도 제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여 그러는데, 와중에 추임새만 얹으며 술잔 기울이는 것이 그의 일이다. 또 그 하잘것없는 토론에 술집 전체의 사람이 다 끼어들고 그러다 언성이 높아지는 게 아니라 날카로워져 서로를 찌르려 들면 입 안으로 기울던 술잔 들어 그 사이를 갈라놓는 것 역시 그의 일이다. 자, 좋자고 하는 술자린데. 힘으로 치워내면 술잔 대신 잔 상처 얹힌 손이 재차 끼어든다. 하고자 하는 일에 고집 세우는 건 누구 못지 않고 말 재껴지고나면 곧장 행동 따라붙는다. 그만 하지. 내리누르는 손길은 오래 펜 잡은 것 치고 여전히 강건하다. 실상 군인치고 유별나게 강한 아귀힘은 아니라 분위기에 거나하게 취한 그네들이 물러서는 건 힘이나 직급 차 때문이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도 굳이 말로 해결하려 드는 놈의 눈동자와 마주치면 누구든 그렇게 된다. 올라가는 손 잡아 누르며 몇 번이고 말로 타이를 거라는 시선이 꽂혀오면 별수 없다. 그런 걸로 술자리 분위기 죄다 망쳐놓고도 그 치는 원래 그래, 같은 소리 들을 테고 분위기 망친 책임은 제때 물러나지 못한 제가 전부 지게 될 텐데 흥에 겨워 보란듯이 언성 높인 이들은 으레 그런 일 못 견딘다. 이제는 오명 같지도 않은 재미없는 사람이라는 별칭을 아주 좋을 대로 써먹는다. 다 제쳐두고, 술집에서며 의무실에서며 남의 시선은 신경 쓰지도 않고 차분하게 끝도 없이 사람 가라앉히는 걸 보면 탄식이 절로 나온다. 제정신은 아니다. 제정신인 놈의 인내심은 아니다. 딱 그게 어릴 적에 입질 없는 고기를 기다리게 하고 해군 생활을 어렵지 않게 쫓아가게 하고 전쟁터에서 목숨을 보전하게 하고 의견 피력할 수 없는 무력감 속에서도 가만히 입 다물게 했겠다. 어른 같은 행색 시작될 때에 주변에서 말 나눈 전부가 군인이었고 머지않아 전쟁이었다. 수많은 선택을 하고도 그 중 태반을 입 밖으로 내지 않은 채 지낸 게 열댓 해를 넘게 몸에 배어 여태 뱉는 언어가 적다. 부하에게는 더 심하다. 그나마 원사일 적에는 스스럼없이 말도 걸고 했다는데 소위 단 초반에는 두 직급 더 아래의 부하들 근처에는 거의 가지도 않았었다. 피해 다니는 건 분명 아닌데도 배려가 과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드는 수준까지 갔다가, 지금은 제법 나아졌다. 그럼에도 어려운 상관이다. 해야 할 일은 정확히 명령하고 그 외에 책잡지 않으니 나쁜 상관은 아니다. 책상 앞에서, 광장에서, 명령내리고 언질 줄 때에, 제대로 군복 덮은 모든 자리에서는 흐트러지는 일 없이 곧고 무겁게 선다. 술집에서 보인 모습은 정말로 다 풀린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느긋하게 앉은 모양이 정말 취한 꼴이 아니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다. 밑동 끌어안고 흔들어대도 나뭇가지 하나 흔들리지 않을 모양새가 정말 사람을 멀어 보이게 한다.
잦은 미소 | 잔해같은 농 | 도르래 밧줄에 달린 닻
정석 향유할 것 같다는 건 거리두기 당한 사람들의 착각이기라도 한 마냥 되도않는 놀이에도 쉽게 어울린다. 저쪽에서 드물게 심각한 얼굴로 하는 토론 들어보면 간혹은 애들 놀이에 진심인 얼굴로 어른의 해결책을 내고 있거나 어느 가게까지의 최단거리를 계산하고 있거나 한다. 그 최단 거리 계산에 일반적인 도로보다 어느 베란다를 어떻게 밟고 어느 집 지붕 위를 지나면 빠르다는 얘기가 끼어들어 있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하나. 난전을 해치고 살아남은 이다. 나서서 위법을 저지르지 않지만 필요하면 정석만을 고집하지 않는 유연함도 있다. 남의 무기 빼앗아 쓰고 남의 배에 건너 익숙지 않은 키 잡는 일도 어렵지 않게 해냈을 거란 추측이 쉽다. 또, 하나. 해달란 건 대체로 해준다. 그런 하잘것없는 논쟁에 진지하게 말 얹는 것 보면 당연하게 알 수 있다. 쏟아지는 웃음이며 쉽게도 굽히는 허리, 누굴 말릴 생각도 없이 분위기 끌어가며 테이블 두드리는 것쯤도 술자리에서 먼저 얼굴 본 사람들 앞이라면 금방이다. 휴일에 길을 걷다 들어선 걸로 안면 튼 맛집에 들어서면 사장 종업원이며 주방장까지와도 가깝게 인사한다. 오늘은 뭐가 새로 들어와서 어느 게 신선하다느니 이런 걸 새로 내어볼까 생각 중인데 어떠냐느니 하는 대화는 주방 안쪽으로 반쯤 기댄 채 이어진다. 왜 이렇게 오랜만에 왔느냐는 질문과 그때 그 일은 잘 풀렸느냐는 안부 인사는 일상이다. 아무렇게나 짚은 짝다리와 휘저어지는 손같은 건 위협적일 걱정도 안 하는 것 같다. 군복 입으면 얼굴에 난 상처까지도 거칠어 보일까 하는 걱정에 덕지덕지 반창고 얹고 다니는 사람치고는 편해보여, 다른 의미로 멀쩡하고 재치있게 일반적인 행복을 누리는 꼴이다. 초면에도 거칠지 않고 대를 세우는 일이 적은 천성에 사람 대하는 사교성도 좋아 편지며 선물은 온갖 곳에서 날아들고 예상치 못한 손님을 길거리에서 맞이하는 일도 잦다. 여관에서 반평생 보낸 덕을 본다. 옆 나라인 이타카나 로도스, 세르비오 등지에서 아르칸테의 작은 여관을 스쳐 가는 사람들은 사연도 웃음도 많다. 웃음으로 사연 넘기는 게 술 마시는 것만큼이나 쉬운 이들 사이에서 자라, 전쟁 동안에 꾹꾹 버틴 것들을 요양하는 동안에 다시 그들과 더불어 지냈다. 해서 간혹 부서진 농 튀어나오려는 게 보고자란 이들 탓인지 천성인지 확신하기 어렵다. 그 치들 다른 특성이라 하면 쓸데없는 소모 없이 유하게 넘어가는 거고 그것마저 배워 고집부려야 하는 일이 아니라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껄끄럽지 않다. 오히려 간혹은 누가 휘둘러주길 기다리기나 하는 사람 같다. 그러니까 결국 이 자유로운 듯 구는 면모마저도 그가 군인인 걸 부정하게 하는 요소는 채 되지 못한다.
강박
그런 탓에 그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속내가 있다. 그러니까 그 녀석한테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게 있다고? 해야만 한다는 생각이란 걸 걔가 한다고? 안 할래, 어쩔 수 없지, 버틸래, 네 마음대로 해. 그 외에, 해야 한다가 정말로 있다고? 정체停滯가 그의 의지임을 짐작하는 이가 드물다. 대다수는 그냥 멍청해서 그렇다고 생각한다. 미련하고 정이 많아서. 책임감이 강해서. 나아갈 수 없는 걸 거라고…. 단 한 번도 나서서 해명하는 일이 없어 그에 대한 평은 가까운 지인일수록 모호하다. 많은 것을 친밀하게 내보이는 일이 정작 중요한 부분만은 가린 채 이루어지는 탓이다. 다정과 염려에 기반한 오만이 그의 강박을 다른 방식들로 드러낸다. 하나는 여태 진창에 깊게 내린 뿌리로, 다른 하나는 멀쩡한 꼴 보이려는 빌어먹을 도르래에 엮인 닻으로. 유구한 악몽과 의무가 그를 진창으로 이끈다. 전쟁은 크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떠났다. 그는 너른 바다 아래에 모래처럼 가라앉은 목숨들 말고, 깊지 못한 늪에 얼굴 박고 기우뚱 떠 있는 이들을 본다. 전쟁이 끝난 지 십 년은 더 지난 지금에도 간혹 거기서 고개 들어보려다 마는 이들이 있다. 죽어가는 데에 지치거나 살아가야 한다고 깨달은 이들이 죄책감에 목 묶인 낌새를 예기롭게 알아채는 것 또한 그의 일이다. 오래 머물러야 한다. 그는 허리에 쇠줄 묶고 나루터의 기둥을 쥐고 서 가라앉지 않을 뭍과의 연결고리다. 그것들 건져내어 뭍에서 기다리는 이들에게 돌려보내는 것까지가 그의 일이므로 정체는 의무이며 벗어둬서는 안 될 굴레다. 그러므로 거기 고이는 것은 미룬 승진과 다를 바 없이 분명히 그의 선택이다. 빈약한 논리는 이런 식으로 흐른다. 미룰 수 있었고, 당겨 촉박히 승진할 수 있었으니 오래 걸음 늦춰 조금쯤 가라앉는대도 다시 기어오를 수 있을 것이다. 거기 머무르는 동안 몸이 부르트는 일은 그에게 단 한 번도 자기 파괴적인 적이 없었고 그것이 어떻게 하면 어느 정도로 말끔해 보이는지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덧날 상처, 부러진 뼈, 뒤틀린 내장이 없으므로 휴식은 필수가 아니다. 그리고 의무 진 속내 드러내지 않아 다른 이들을 그 진창에 발 들일 일 없도록 하는 것까지가 그의 어긋난 다정이다. 상냥하여 기꺼이 돕겠다고 손 내밀 사람들을 알아 속내를 드러낼 일 없고, 그런 진창에 발 들이고 있다는 걸 알면 속상해할 것을 알아 또 드러낼 일 없고, 그런 꼴보다는 멀쩡하게 웃는 걸 더 좋아할 걸 알아 더 그렇고, 그렇지 않은 걸 보면 힘들어할까, 안타까워할까, 속 터져 할까, 불편해할까… 해서 그의 강박은 그의 의지로 벗어날 일 요원한 늪에서, 애정하는 이들에게 내보일 안온한 뭍에서, 보호의 의무를 오만같은 다정으로 둘러 정체의 모습을 하고 드러난다. 상담사로서도 지인으로서도 가장 멀쩡하고 괜찮은 꼴로 서는데 그게 온전히 같은 모습으로 합치되는 일이 도무지 없다.
그렇게 도통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얼굴로 꼿꼿하게 서서 어깨 늘어뜨리고 있는 군인 하나가 나온다. 그럼 내가 군인 아니고 대체 뭐겠나.
기타
5월 13일생.
분가한 첫째 아들.
항구 가까운 곳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평민 부모 아래에, 다섯 살 차이 나는 여동생 하나를 애 마냥 돌보며 자랐다. 이미 다 커서 같이 자란 남자애랑 결혼하고 애까지 낳았는데도 여전히 애 취급을 한다. 멀지 않은 곳에 사는 작은 삼촌네 식구들과 자주 교류했다. 가족과 가까이 지내고 사이도 좋은 편이다. 모든 축제 때에 본업 덕에 축제를 챙기고 본가도 조금씩 신경쓰느라 몸도 마음도 바쁘다. 그나마 가을 축제 때가 가장 한가하다. 지금은 방이 둘, 거실과 부엌, 욕실 딸린 집에 아내와 둘이 산다.
어릴 적부터 여관에서 자라 금전 방면에는 빠삭하다. 더불어 생면부지의 사람과도 잘 어울린다. 순찰 내지 휴가 때에나 들리던 게 결혼 이후에는 횟수가 더 줄었다만 여전히 한 번씩 시간 내어 본가 여관에 들르곤 한다. 일을 돕기도 하고 해적으로 추정되는 인물들과 같은 테이블을 쓰는 일도 여전하다. 해군인 것을 굳이 티 내지 않으나 알아챈다면 따로 부정도 않는다. 군복 덮었을 때 그럭저럭 격식 차리던 어미는 이럴 때에 온데간데없고 뭐라는 거야? 정신 차려라. 하는 말이 쉽다.
음주, 흡연, 카페인과 당 섭취 전부 전적이 있으나 지금은 거의 끊었거나 과하지 않게 한다.
인생 전반에 여러모로 해적들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삼촌 따라 고기잡이배 타던 애가 해군에 들게 된 데에는 이유가 있다. 해변에서 몇 번 만난 애가 방향 좀 가리켰다고 냉큼 그 길 위에 오른 건 뭍에 있는 가족들 위협하는 바다에서의 흉흉한 소문들 탓 없다고 못 한다. 그전에도 여관에서 큰돈 쓰고 가는 건 보통 큰일 하나 끝낸 용병이거나 오랜만에 뭍에 내려 주머니 두둑한 해적이곤 했다. 여러모로 해적들의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이 그래봤자 뱃사람 언저리나 겨우 된다는 것도 안다.
해적을 증오하지는 않는다. 전쟁에서 잃은 동료들을 떠올리면 애끓는 마음을 숨길 수 없으나, 그럼에도 그것은 전쟁이었다. 개인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동료들은 의무를 다한 것이다. 개개인으로의 해적은 모든 증오를 받아낼 대상이 되지 못했고, 집단으로의 해적은 일 상대 이상도 이하도 되지 못했다.
하지만 차라리 훌쩍 떠나버릴 그네들이 대하기 더 쉬운 것도 맞긴 해서….
바다도 사람 잡아먹는데 사람 잡아먹은 사람이 뱃사람 아닐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하릴없이 바다 칭송하는 이들이 들으면 기함할 소리를 속에 쉽게 품고 산다. 아끼지 못해 못내 아쉬운 바다에 대한 심통은 아니고, 침묵 못 견디는 삶도 삶이긴 하잖느냐는 말에 힘입은 미약한 발버둥이다. 그 삶을 배 위에서 살아내곤 했으니 해적이건 해군이건 뱃사람이긴 할 테다. 의미 없는 선 긋기와 일말의 선망을 덜어내는 일도 사람 되어가는 과정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겠다.
바다가 승리하기까지 열린 모든 마리스텔라에 참전했다. 전부를 바다가 승리하는 쪽에 걸었었고 내기에서 이긴 건 그중 단 한 번이다. 지금까지도 축제처럼 열리던 초반이 그나마 볼거리가 있었으며 일리아스와 레비아탄 두 조직의 대립이 된 모양새는 보기 그다지 좋지 않았다는 말을 종종 한다. 정말 그랬느냐고 물으면 공백이 생긴다. 시간이 해 주는 추억 보정이라는 게 참 무시할 게 못 된다.
의식해 바꾸지는 않지만 군복 입었을 때와 벗었을 때가 이래저래 사소하게 다르다.
군 서류에는 깊게 눌러쓰지 않은 정갈한 글씨가 간격을 맞추어 늘어선다. 서명은 알아볼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쓰였고 다른 부분들의 속도감도 비슷하다. 공적인 편지에도 마찬가지다. 편지의 대상과 내용이 가벼워질수록 눌러 쓴 정도는 들쭉날쭉하고, 긁힌 듯 끝이 날아가는 서체가 된다. 끝단에 서명할 적에는 B 정도만 겨우 알아볼 수준으로 적힌다. 아무렇게나 날아간 서명은 늘 일정한 모양으로 뭉게져 있고 겉봉에 적힌 이름은 그래도 깔끔하니 발신인 못 알아보는 일은 드물다.
군홧발로 걸을 때는 비교적 좁은 보폭으로, 팔은 거의 휘두르지 않고 위아래로 흔들리는 일도 적게 걷는다. 행동반경을 넓히지 않는 습관이 들었다. 허리도 곧게 세우니 서 있는 것과 거의 다르지 않다. 군홧발로 걸을 때는 흉식, 아닐 때는 복식 호흡 하는 것은 발 놀리는 횟수와 옷 각 잡혀있는 탓이 클 것으로 평소에는 그보다 느긋하다. 팔은 뒤로 조금 누운 상체와 함께 흔들리고 보폭은 자연스럽게 넓다. 뒤꿈치 다음 앞꿈치가 착실히 이어 체중 지탱하던 것과 달리 털퍽 내던진 뒤꿈치에서 다음 뒤꿈치로 넘어가듯 걷는다.
호
음식은 다양한 맛과 식감이 나는 것. 옷은 적당히 통풍되고 붙지 않는 것. 간식은 한입에 넣을 수 있는 것. 음료나 알코올보다는 물. 적당히 소란한 장소. 과일 전반.
불호
과한 적막. 난데없는 총성.
티가 날지언정 굳이 드러내지는 않는다. 기본적으로 호불호가 옅기도 하고, 그런 걸 논할 수 없는 상황에 익숙하다.
취미
맛집 찾으면 그런 음식 좋아하는 사람한테 추천하기. 광장에 서서 지나다니는 사람들 구경하기. 여관 한구석에 앉아 사람들 떠드는 것 구경하기.
특기
같은 음식 석 달 동안 먹기. 사실 반복행동류는 거의가 특기다.
버릇
생각하는 일을 간단히 그만두지 못한다. 그래서 시작조차 하지 않으려고 한다. 적막할 때 발 튀는 습관이 있다. 많이 나아졌고, 나아지는 중이다. 상대가 생각할법한 멀쩡한 모습에 맞춰주려는 것도 버릇이라면 버릇이다.
생활방식
05시 기상. 늦어도 08시까지 출근. 18시까지 근무. 퇴근 후에는 보통 저녁을 먹고 장보기를 포함한 간단한 집안일들을 해치우고 산책 겸 운동에 나선다. 보통 아침에 가볍게 한 번, 저녁에 한 번 씻는다. 식사는 아침 점심 저녁 세 끼 전부 챙기는 편.
소지품
<은제 나침반>
<아내의 웃는 초상이 든 로켓 목걸이>
<왼손 약지의 은색 반지>
<손바닥만한 흰 수첩>
<흰 대리석같은 만년필>
개인적인 일까지 궁금해할 줄은 몰랐는데.
뭐, 좋아. 집 안에 들어올 땐 흙 묻은 발은 털고, 손 씻고, 옷은 저 쪽에… 잠깐, 대위님!
…금방 돌아올테니 기다려. 로잘리!
바스티온 마티아 핸즈 블레이크 Bastion Mattia Hands Blake
두 이름 모두에 신세를 지고 있다. 언제까지고 그런 식으로 표현할 수밖에 없는 성정이다.
바다, 밀려오는 끝자락만으로 눈길을 끄는 광활한 자연. 그는 제 죽을 자리가 바다 아님을 오래 알았다. 뭍에 적을 두고 흔들림 없는 침대에 몸 뉘는 인간이므로 해군이라는 소속이 우스운 날도 종종 있다. 바람에 부푸는 옷들 아무렇게나 걸치고 언덕에서 들판과 숲, 해변과 파도 번갈아 내려다볼 때 쉽게도 들판에 등을 맡기고 해풍을 대비하는 것이 또, 그의 일이다. 그러나 의무는 아니야. 그렇게 곱씹는 것은 그가 사람 되어가는 과정에서 덧붙은 습관이다. 그건 아집이 맞지. 인정하려면 되뇔 수밖에 없는 문장이고, 그게 상처도 맞아…. 잊지 않기 위해 언젠가는 입 밖으로 내게 될 선언이다.
아내 분의 감이 이런 곳에서 이상하리만치 예리하고 그가 간혹 전쟁 영웅의 보직 이전 추천서를 쓸 생각을 하게 할 정도로 신통하여 그것도 치료라는 걸, 제게도 어떤 문제가 있기는 하다는 걸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말이다. 덧날 상처, 부러진 뼈, 뒤틀린 내장, 더불어 진실로 부르튼 몸 따위가 없으므로 스스로 내리는 진단은 온통 무용하다. 그의 가장 큰 환부는 단연코 상처 그 자체가 아니고 스스로를 괜찮다고 여기는 그 오래 곪은 딱지가 된다. 성벽 같던 딱지 앉히는 일에 핸즈가 힘썼고 그 딱지 뜯을 생각하게 하는 데에 블레이크가 이바지했다. 그 탓에 멀쩡한 꼴로 사람 안심시키려 들었고 온통 저를 부정하려 들 뻔 하였으나, 그럼에도 남에게 기대는 일 드문 이 사람이 표하는 최대의 경애가 신세 졌다는 말로 겨우 흐른다.
진창에서 나오는 일이 어떤 배신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놓친 손들을 오로지 그의 불성실 탓으로 돌리는 오만을 버리는 것. 그게 그에게 필요한 치료이며 의무로서의 휴식이고 뒤늦은 재정비임을 아는 것. 나는 괜찮다는 말로 그 전부를 미루지 않는 것. 여태 갈 길이 멀다.
사랑하고 가까이 두던, 일상을 지켜주는 이들이 해쳐진 일 없던 때와는 다르다. 그 누구도 그와 가까운 이들을 해친 적 없다. 다만 상처 품은 사람을 일상에 들이기로 했을 뿐이다. 바다에 적을 두고도 그의 부러움을 채 받아낼 수 없는 꼴로 난파한 파도를, 어쩌면 온전히 바다에 속하지 못해 가까스로 등 맡길 수 있는 묘지를, 제 것 아닌 보상 심리를 내세워 남 탓 같은 걸 해볼 수도 있게 하는… 당신을 대체 뭐라고 부르면 좋을지.
해서 별수없이 생은 살아질 테니,
어때. 뭍에 오래 머문 닻도 항해를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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