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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ro
서기관이 펜을 내려놓으면, 그렇게 이야기가 하나 끝난다. 그는 바쁘지만 정갈한 글씨체로 이야기를 적은 종이들을 모아 정리한다. 동그랗게 떨어진 핀 조명은 여전히 ( )에게 향해있고, 나머지는 어둠이다. 내담자의 말을 들을 사람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다시 한 번, 탁. 탁상 위에 내려치는 손짓으로 종이를 정리하고, 핀 조명이 아직 서명할 지를 정하지 못 한 ( )를 떠나 아무것도 없는 빈 자리에 가 닿을 때까지 책상 위를 다듬는다. 그리고 그는, 다음 발화자로서 이렇게 이야기를 시작한다. 대위님, 제가 싫어하는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스스로 조명 아래로 걸어든다. 혹시나 해서 먼저 선언하건데, 제가 나열할 두 가지 모두 대위님을 탓하고 책망하는 종류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것이 제가 대위님..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바스티온은 저 멀리, 부서진 배 위에 기대얹힌 마스트를 본다. 그 비스듬한 꼭대기에 턱 괴고 앉아 모든 것이 무료하다는 표정을 짓는 블레이크를 본다. 눈 마주치면 빙글 웃고, 장난스럽게 손 흔들어보이는 구국의 영웅을 본다. 그리고 그 위 어디서도 이든을 찾지 못한다. 그래. 당신 꼴이 어디 사람 가만히 있게 하는 꼴이던가? 동정은 커녕 애정도 싫다면 그 십 년동안 당신은 적어도 단단해졌어야 했다. 구국의 영웅, 그 용맹 다 죽은 꼴 보라는 듯이 마스트 위에 올라앉았을 때, 그 밑의 배도 함께 꾸며진 것으로 두어야 했다. 허풍에는 약간의 진실이 필요하다지만 다 부서진 꼴을 내보여야했나? 길거리에 널어두고 지나는 사람들이 아쉬운 발길질 하도록 두었어야만 ..
생각은 길다. 바스티온은 무감해보일 뿐 무감한 사람이 아니고, 미련해보일 뿐 미련한 사람이 아니다. 그는 단서만 주어지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유추해내는 사내였다. 제 주변을 둘러싼 많은 것들에 민감하게 반응했으므로 굳이 따지자면 제롬의 속내를 알고도 제롬에게 가장 크게 흔들릴 사람이 그였다. 남의 기분을 예민하게 느끼는 사람이 가장 휩쓸리기 쉽다. 그러므로 그 10초 가량, 제롬이 자신을 내보이기 전의 공백동안 그는 제롬의 기분이 상했음을 안다. 바스티온은 기다린다. 새초롬한 시선, 풀 죽은 듯 음식 뒤적이는 손길, 억지 웃음과 반만 차린 예의가 담긴 작별인사. 당신의 위상을 모르지 않았으므로 그 모든 것이 꾸며내 졌다는 사실도 알기 쉽다. 상관이 가게를 나서면, 걱정스러운 얼굴을 한 주인장과 눈이 ..
해가 다 떴을 때 까무룩 떨어진 정신은 중천에 닿고서야 건져올려진다. 그리고 정신이 들거든 그야말로 혼자만의 난장판이었다. 바스티온은 제 얼굴을 쓸어내린다. 지난 밤의 추태가 떠오른 탓이다. 참, 어디가서 말도 못 할 일이었다. 다잡은 모양새는 꼭 이 기간에 온통 흐트러지곤 했다. 편한 자세, 흩뿌리는 감정, 정제되지 않은 것들. 정신없이 바쁘니 그럴 수 있다, 정도로 넘어가는 것도 이 기간이라 그런 것이니 다행이라 해야할지. 정신 놓고 다니지 말아, 제발. 알면 자제를 해라. 스스로에게 쏟는 잔소리. 팔을 쓸어내면 옷 아래의 상처 자국이 새로 정신을 깨친다. 바스티온 핸즈 원사. 장점이라 하면 그럭저럭 몸에 벤 예의, 단점 늘어놓자면 끝도 없지만 당장 부합하는 것은 세 가지. 첫째, 딱딱함. 둘째, 주..
탕! 가끔씩 정적을 물리려 책상 내려치는 소리. 야, 시끄럽다고! 방 문 걷어차이면 대꾸도 없이 소리가 멎었다. 좀 자! 새벽까지 난리야. 대꾸 없다. 핸즈, 곧 다른 성을 달게 될 소녀는 저 꼴이 마음에 들었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주변 아이들에게 너네 오빠 해군이라며? 소리 들을 때나 좋았던 거지. 그건 한참 전의 일이었다. 전쟁 이전에. 아직 소녀가 열댓이나 조금 덜 되었을 때. 오빠가 각잡힌 군복을 입고 그 전과 똑같이 고요하지만 재수없는-적어도 그녀에게는- 웃음을 달고 집과 관저를 드나들 때. 그 때야 뭐, 알았겠나? 뭐든 알았겠냐고. 탕! 탕! 탕! 정적 깨지는 소리. 참 질리지도 않고 건강하다. 매년마다 같은 시기에 총성이 울렸다. 그게 햇수로 벌써 열 해가 넘어갔다. 총성이 직접 울리..
공개란 [ 육지에 내린 닻 ] ❝ 해군과 해적 이전에 뱃사람이 있었다. ❞ 인장 픽크루 출처 인장 다운로드 링크 외관 피곤한 듯 살짝 찌그러진 인상. 하지만 본 얼굴이 유한 편이라 성격이 나빠 보이지는 않는다. 군복을 입지 않으면 술자리에서는 시비가 걸리기 일쑤인 낯. 어쩌면 그냥 볕이 강해 찌푸린 걸지도 모른다. 탁한 라임같은 눈 색. 외에는 색채를 빼앗긴 듯 하얗고 검다. 그리고 제복 덕에 어둡게 푸르다. 앞머리를 내린 본인 기준 오른쪽 눈 위에 긴 자상, 왼쪽 눈 아래의 짧은 자상, 오른쪽 볼을 가로지르는 긴 상처. 굳이 가릴 필요는 없지만 몇몇 아이들이 무서워하는 듯도 해 밖에 나갈 때는 가리고 다니는 것이 습관이다. 공식적인 행사라면 머리도 넘기고 반창고도 뗀다. 장신구며 문신의 흔적도 없이 말..
1. 같함선이었다면 더보기 와.. 저 이거 여쭤봐도 되나요? 같함선이었으면 애들 관계 궁금해요 우와 저도 궁금해요 우와 저도요 아놔 둘다과로해요 그렇지 아무래도 걍... 함선 일을 둘이 다해요 그렇지..... 그렇겟지... 근데 또 잘하고자 하는 열정은 둘다 꽉꽉 찬 상태라 어떻게든 해내고 하하 드디어! 하면서 둘이 술마심 서로 말리지도 않고 그럼 이건 제가 이건 대위님이 하시면 딱이겠습니다 그러지 결재 이러고 할 일 다 해낼듯 약간 여기는 내적인 부분을 들여다보지 않을지도 모르겟다는 생각 그러니까요 어 맞아요 그런 것보단 정말 일만함... 뭐? 내적인 고찰? 너 어디아프냐 서류나해 다른 거 못봐요 앞에 놓인 일 처리하는 데 바쁜 둘 할 일도 많은데 지금 한가하십니까? 아오 이러고있을듯 사적인 ..그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