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o
철옹성 본문
“명령 없으면 시체꼴로, 그렇게 평생 살거야? 사람처럼 살 정도만 생각하랬더니 무덤 파고 누울 정도로 생각할거냐고. 모르겠으면 물어봐! 내가 말해줄게. 혼자 멍청한 짓 하지 마. 알겠어? 튀면 죽어! 알겠냐고.”
그것은 성을 세우는 과정이었다. 거기서 기다려. 그래서 기다렸다. 차근차근 돌이 쌓아올려지는 모습을 보며, 그 높이가 제 눈보다 높아져 성벽 외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에도 기다렸다. 견딜 수 없을 때에는 목소리를 떠올렸다. 혼자 멍청한 짓 하지 마. 알겠어? 알겠어. 중얼이면서. 그녀는 자신을 버리고 가지 않을 것이다. 도망치는 것을 끝끝내 잡아끌어 되돌아 앉혀놓았잖나. 하지만 혹여, 버리고 간대도 어쩔텐가? 이 성벽이, 사실은 성벽이 아니라 감옥이라도 뭐, 감히 어쩔텐가? 오랜 시간이었다. 아마 그랬겠지. 아니었나? 알 수 없었다. 생각을 멈추면 시간도 함께 멈췄다. 자, 이 정도면 괜찮지? 이 정도면 단단해. 나와서 봐봐. 그렇게 잡아끌려 나가 본 성벽이 높고 단단했으므로, 바스티온 핸즈는 제법 오랜 시간이 흘렀음을 안다. 아, 여기도 막아야하는데! 하는 목소리를 들을 새 없이 높은 성벽을 올려다본다. 속이 텅 빈 감각을 느끼며. 무엇이 들어있었는지는 몰라도 아마 서 있는 동안 전부 흘러내린 것 같았다. 발치 어딘가에 구멍이 있었겠지. 어쩌면 그 찔린 상처로 흘러내렸을지도 모른다. 무감히 그런 생각을 하고, 그 흘러내린 것이 안에 든 채 방금 나온 출구까지 완벽히 닫히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 웃음을 보았다. 그가 절대 해칠 수 없는 웃음. 해쳐서는 안 되는 웃음. 불안함이 가시고 짜증이 가신, 안도와 자신이 어린 웃음. 완벽한 수호를 직감한 이의 말끔한 얼굴. 그리고 탕! 그 심장을 뚫는 탄환. 순식간에 사라지는 웃음. 고통으로 점철되는 얼굴. 그 탄환이 자신이 될 수 있음을 알았다.
그래서 바스티온은 성의 파수꾼이 되었다. 핸즈가 세워준 성벽을 끊임없이 둘러보며, 수리할 곳이 없나 둘러보는. 성벽 밖에서 할 일이라곤 그런 일 밖에 없지 않나. 보다 단단하기 위해 구멍은 모조리 막힌 성벽이었다. 아주 단단했고, 자랑할 만 했고, 멀쩡했다.
그러니까, 바스티온은 그 무사함이 얼마나 끔찍했는지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말할 수 없었다.
바스티온 핸즈는 무사했고, 바스티온 원사도 무사했다. 결함 하나 없는 몸으로, 결함 하나 없는 환경에서 그가 대체 어느 것에 불만을 표할 수 있겠나? 팔 뻗으면 손에 짚이는 것이 세상에서 가장 단단한 철옹성이었다. 사랑하고 의심할 바 없이 단단한 가족이 세워준 방어벽 앞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저 안에 내가 보지 못한 모든 것들이 가득 들어있노라고? 이 벽을 부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노라고? 저기에 그 벽 하나 없이 바람을 맞으며 다 세우지 못한 천막이 부숴지지 않도록 붙잡아야 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부숴지지 않게 하기 위해 애쓰느라 회복의 조각조차 바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더 나빠지지 않을 수 있는, 이 천운이 함께 한 상황에 바스티온이 대체 무슨 목소리를 낼 수 있나? 바람에 휩쓸려 날아가기 직전인 사람만이 비명을 지를 수 있다. 물에 떠밀려 잠겨가는 사람만이 도움을 청할 수 있다. 철옹성을 등에 업고 그가 대체 무엇을 할 수 있단 말인가? 보이지도 않는 상처에 대해 어떻게 감히 울음 울고, 어떻게 감히 비명 낼 수 있을까.
게다가, 어떻게 따라 웃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그 웃음. 그 자랑스러운, 안도와 자신이 어린, 가족의 단단함을 믿는 웃음을. 웃지 않고, 끝내 제 손으로 그 행복을 깨란 말인가. 제 모든 것을 바쳐 지키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평온이었으므로, 그는 행복을 위할 필요가 있었다. 상처는 아물고 있다.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아주,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후에 그 상처가 다 아물었다 싶거든, 그럼 그 성벽을 허물어도 되지 않겠나. 그러니 비명은 잠시 참고, 구원을 바라는 손길도 성벽 안에 욱여넣어 두고, 바깥을 훔쳐보려 뚫는 구멍도 잘 메꿔야 할 것 아닌가? 바스티온 핸즈는 환자가 아니었다. 파수꾼이었으므로, 그 역할은 명확했다.
그러니 저보다 약한 이들에게 대체 어떻게 기대란건가? 동료를 잃는 것 쯤 흔한 일이다. 가족을 잃고, 몸을 잃고, 정신을 잃고, 재산, 일상, 희망을 잃은 사람들 앞에서 그가 감히 무슨 말을 할 수 있나? 그 모든 것이 운 좋게 무사한 그가 이 철옹성을 두고. 그러니까, 이 철옹성을 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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