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o
제가 선물 받아달라고 조르는 것 같지 않습니까? 본문
하고싶은 말이 너무 많아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바스티온은 저 멀리, 부서진 배 위에 기대얹힌 마스트를 본다. 그 비스듬한 꼭대기에 턱 괴고 앉아 모든 것이 무료하다는 표정을 짓는 블레이크를 본다. 눈 마주치면 빙글 웃고, 장난스럽게 손 흔들어보이는 구국의 영웅을 본다. 그리고 그 위 어디서도 이든을 찾지 못한다. 그래. 당신 꼴이 어디 사람 가만히 있게 하는 꼴이던가? 동정은 커녕 애정도 싫다면 그 십 년동안 당신은 적어도 단단해졌어야 했다. 구국의 영웅, 그 용맹 다 죽은 꼴 보라는 듯이 마스트 위에 올라앉았을 때, 그 밑의 배도 함께 꾸며진 것으로 두어야 했다. 허풍에는 약간의 진실이 필요하다지만 다 부서진 꼴을 내보여야했나? 길거리에 널어두고 지나는 사람들이 아쉬운 발길질 하도록 두었어야만 했나? 그리하여 십 년 간 수리하는 일도 없이 부서져만 가는 배를, 위에 앉은 당신 말고 내가 오래 보도록 해야만 했나.
바스티온 핸즈는 제 앞에 놓인 모든 종류의 상처를 어떤 방식으로건 피해갈 수 없는 성정이었다. 그것을 더 후벼파는 꼴을 보느니 제 혀 한 번 깨물어버릴 정신머리였다. 그러니 길게 참지 않았나. 참고 견디는 것이 그의 특기라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오래 참지 않았나.
숨 참는 버릇, 급히 말하면 새는 기침, 당연하게 거리를 두는 언행, 자기파괴적인 행보. 걱정 할 것 없다고 말할거면 그 배 감추려는 시늉이라도 해라. 그것마저 꾸며낸 척 하지 말고.
그는 웃지 못한다. 태연하지도 못하다. 못내 얼굴을 찌그러뜨렸다가, 아무 말 뱉지 못하고 아픈 숨을 뱉는다. 그가 가진 단어들은 다시 사람답게 말 한지 몇 년이 흘렀음에도 유려하지 못했고 둔한 뱉음이었음에도 예상치 못한 날 선 면으로 상대를 긁고 지나곤 했으므로, 말 않는 것까지가 당신을 향한 안온이나.
대위님,
답이라도 하듯 꼬박꼬박 직급으로 따라붙는. 당신 가진 거리감이야 바로 그것으로 옳다는듯이. 사석에서조차 당신 이름 부른 일이 있던가? 이든, 너무 가깝고. 블레이크, 깍아지르듯 멀다.
저는 친구가 꽤 많습니다. 그 중에는 몇 해동안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도 있고, 몇 일 전까지 꾸준히 얼굴을 보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들 모두에게 잘해줄 수 있습니다. 제가 원래 주변 사람들한테 줄 수 있는 최대한을 줍니다.
그는 돌려 말한다. 당신을 특별취급 하는 것이 아니라고. 당신도 그 많은 사람들 중 하나이고, 모두가 그렇듯 보통 사람 중 하나로 취급받고 있다고. 내 일상에 당신이야 우러러보도록 높이 있는 영웅도 아니고 손 아래 둘 수 있는 동정의 대상도 아니라고. 최소한 그렇게 되도록 노력했다고. 당신은 특별취급을 좀 그만 받을 필요가 있었다.
오히려 대위님께는 가려내고 드리는 중입니다.
도망가실 거 아닙니까? 농담처럼 덧붙인다. 그럼에도 유난히라 느꼈다면, 그게 제 미숙의 증거가 될 것이었다. 부담갖지 않을 거리감, 늘 그게 어려웠다. 하지만 알고도 밀어내지 않고 이유를 묻는다면 답해주고 싶어지잖는가. 지켜온 자리에서 더 건넬 것처럼 뒷짐 진 손 풀었다가.
그것도 부담스러우시면 그냥 속없이 좋은 사람이라 그러나보다 하십시오. 그렇게 칭찬주시지 않으셨습니까.
다시, 제자리. 증명된 거리로 돌아온다. 밀어낼 수 조차 없도록 하는 것만이 제 유일한 이기였다. 줄어드는 잔소리와 다를 바 없이. 살필 수 있게라도 하십시오. 아주 떠나시지 않을거라면.
저 주실 건 됐다고 말씀 드렸으니 스스로를 더 싫어하실 일은 줄었겠습니다. 원망의 대상은 뚜렷할 수록 정신건강에 좋다니 그 자식 때문에 살아남았노라고 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그게 저한테 독이 된다면 참 유감스러운 일이겠습니다만 그럴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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