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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ro
반으로 두 번 접힌 종이는 이전과 재질이 같다. 펼치면 또 손바닥만하다. 다시는 눈을 뜨지 못하는 꿈. 침대 밑 요정이에요? 여전한 악필. 정돈하려고 애쓴 흔적은 보인다.
아무렇게나 뜯어낸 것 같은 손바닥만한 종이가 쪽지 모양으로 접혀있다. 길이 가늠을 잘못 한 듯 쪽지 한 쪽 다리가 지나치게 짧다. 정신 차린 지 하루. 퇴실까지는 요원해보임. 종이에서 손을 거의 떼지 않고 쓴 듯 지렁이처럼 이어진 선은 충분히 악필이다. 두 줄 사이의 간격이 꽤 넓다.
[ 육지에 내린 닻 ] 사랑하는 바다에서 죽는다면 그야말로 호상이 아니겠냐며 웃는 소리들 사이에서도 끝끝내 바다에서 죽으리라 말한 일 없다. 끈질긴 목숨 믿지 않으나 모두가 곧잘 사랑하고 마는 바다 품이 단 한 번도 몸 뉘일 곳 아님을 안다. 거기서 누구 대신 총 맞더라도 질긴 숨 이어붙여 육지 닿거든 숨지리라 내 아끼고 나 아끼는 이들 품으로 돌아오는 일을 숙명으로 삼으리라 그래서 육지. 내 몸에 줄 감아 너희 목숨 끌어내리라 해서 비로소 닻. 그러므로 있을 곳 아닌듯 한 자리에 뿌리내리더라도 그것이 도무지 짐이나 버거움이나 고통이 되선지 안못 될할 것임을 그가 알아, ❝ 어때, 닻으로 기능하는 것 같나? ❞ 농이야. 긴장하라고 한 말 아니다. 인장 픽크루 출처 인장 다운로드 링크 외관 오래 쓰인 닻이..
자네는 나 죽으면 어쩔건가? 그런 질문 받은 일은 전쟁 전후로 죄다 드물었으므로 그저 바라본다. 마찬가지로 전쟁 전후에 그런 질문 받은 일 희박할 저 참전 군인은 꼭 전쟁터에 서 있을 때처럼 물었을 뿐이다. 그는 익숙하게 사후 처리 과정을 떠올린다. 가능한 경우에, 물 위에 뜬 사체 건져내어 정말 죽었는지 다시 확인한다. 견장과 은 나침반 등을 통해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경우 이름과 직급을 호명하며 청음 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거나 신원을 확인할 수 없을 시 맥박, 호흡 등을 통해 직접 확인한다. 사망을 재확인하면 신원 확인에 도움될만한 장신구를 포함한 신체 특징은 가능한 한 확보하고 기억한다. 이후로는 선내에서 사망한 병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기록과 대조해 본인 확인한 사체는 일괄 수장하며 장물은..
Unsent 끝내 조각만은 담아. 밤입니다. 로잘리. 오늘 야간 배치거든요. 달이 훤하네요. 들어본 적 있습니까? 우리가 같은 달을 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몇 번이나 더 남았겠냐는 말 말입니다. 전쟁 중에는 매일 밤마다 동료들과 그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쯤은 자조섞인 농이었습니다만 그 때 주변 자리 꿰찬 이들 소중히 하는 티를 내기로는 그만한 말이 없었습니다. 사랑하는 바다에서 죽으면 호상이라던 녀석들을 죄다 육지로 당겨올리겠다는 소리를 해대던 것도 벌써 십 년이 훨씬 넘게 지났습니다. 다행히 그 문장은 전쟁터에 고이는 일 없이 제법 흘렀습니다. 그건 이제 우리 얼굴 좀 자주 보자는 뜻으로, 지금 곁에서 달 같이 보는 이가 소중하다는 말로 자리매겼습니다. 문득 옛 뜻이 떠오르긴 합니다만 웃..
To. You 귀관이 아니라, 편지 받고 놀라지 않을지 걱정이군. 심각한 내용은 아니니 염려 마라. 일반적인 편지 서문이 아니라는 건 아는데 그런식으로 쓰면 기겁할까봐 걱정이 되어서. 다시 적는데, 심각한 내용은 아니야. 어쩌면 심각해 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은 드는군. 다시, 내용의 문제는 아니고. 원래 상관에게 받는 글들은 다 그렇잖나. 긴장했나? 내용이 심각할까봐? …솔직히 조금은 놀려먹은 거 맞다. 너무 토라지진 마라. 여전히 군에서 함께 복무하는 부하에게 편지를 쓸 일이 한참 없었던 탓에 나도 긴장을 한 모양이지. 실망했나. (이것도 조금은 농이다.) 이전에 네게-호칭 탓에 놀라게 했다면 미안하군. 불쾌했다면 이 편지만 참아줘.- 편지 쓰는 일에 대해 가벼운 조언을 했던 게 생각나서. 그리고 더불..
불사와 필생의 간극 (1) 꿈을 꾸거든 견디지 못할 때가 많았다. 그것들은 보통 그를 죽이지 못하고 어떤 고통들과 다르게 그를 성장시키지 못한다. 그래서 바스티온 핸즈가 악몽에 대해 내리는 평가는 이러하다. 수면에도 하등 도움 안 되고 그러나 간혹은 그리워 더욱 괴로운 것. 망령된 소리가 들릴 때 믿음 없이 십자가를 들지 말라. 낮의 볕이 길게 늘어진다. 사람도 따라서 늘어진다. 바스티온은 걸음 곁을 스치는 그늘 안에 우그러든 사람들을 본다. 걸음을 늦추지는 않는다. 목적지가 명확하면 걸음이 흔들릴 일이 없었다. 이번에는 옛 전우의 집이다. 매번 전하는 약이 이번에는 난데없는 컨디션 난조로 밀린 탓에, 도무지 우편을 통해서는 전달할 수 없어 직접 걸음한다. 제조하는 동안에 편지가 두어 번 오갔으니 언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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