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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ncero
흰 봉투 안에 종이 몇 장이 들어있다. Dear. 얼음 여행자 축하합니다! 나 정말 잘 안 울거든요. 미시의 업적 중 하나로 일기장에 적어두어도 좋아요. 내가 아주 오열을 하는 바람에 가족들이랑 같은 병실 사람들이랑 담당 간호사 선생님까지 전부 호출해버리게 한 그 사태의 남모를 원인으로서 말이에요. 그 사람들은 내가 참고 참아온 서러움이 폭발한 줄로 알아요. 아무렴 내가 알고지내던 외계인이 보낸 편지가 나를 너무 너무 너무 너무 외롭게 해서 울었다고 말 할 순 없잖아요. 그럼 나는 이 병원에서 퇴원한대도 곧장 다른 병원으로 보내졌을거예요. 그래봤자 우주 기준의 좌표로 치면 눈치도 못 챌 만큼 조금 옆으로 옮겨간 정도겠지만요. 하지만, 미시. 나는 왜 항상 모든 것들을 이렇게 내 의지와는 전혀 상관 없이 ..
흰 봉투 안에 편지지 몇 장이 들어있다. Dear. 미시 아직 지구에 있나요? 우선 좋은 소식으로, 미시의 편지를 혼자 읽어도 될 정도의 시간은 지났어요. 그러니까 애수는 전부 내 것이고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어느 정도의 축하를 보내오고 있다는 뜻이죠. 퇴원을 했다면 미시를 보러 가고 싶었을텐데 유감입니다. 퇴원은 이제 아주 요원하지는 않지만 회복세는 내 생각보다 더딘 것 같아요. 퇴원을 한대도 활과는 아주 작별일 것 같고요. 감으로 어떻게 안 될까요? 내가 해 온 게 얼만데. 아무튼 그러한 이유로, 혹시 나 있는 근처에 오더라도 방문은 말아주세요. 고맙습니다. ( 거침없이, 그보다는 다소 거칠게 이어지던 글은 다음 줄부터는 제법 정돈되어 있다. 글자 크기도 약간 다르다. ) 하지만 미시한테 잘못이 있는..
흰 봉투 안에 편지지 몇 장이 들어있다. 겉봉에 쓰인 글씨는 아주 느리게 쓴 듯 꾹꾹 눌러 적혀있다. Dear. 바다 테르미스 안녕하세요, 구름 사이 볕. 좋은 저녁입니다. (그러고보니 거기서는 날짜를 어떻게 세나요? 우리는 수평선 위로 해가 뜨고 지는 걸 하루의 기준으로 삼아요. 지금은 해가 지는 중이에요.) 보낸 편지 이후에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나에 대한 몇 가지는 이미 답했으니 다른 것들에 대해서 얘기해볼게요. 미시의 무료함(바쁜 것 같으니까 무료한지는 모르겠지만)을 달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생각해봤는데, 물론 나는 꽤 예의바른 아이고(정말이에요) 예의바른 학생은 남의 상처를 후벼파지 않는 법이지만, 글쎄요. 아직까지는 미시의 이야기가 아주 멀리 느껴져서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제가 심심해서 ..
흰 편지 봉투의 겉봉에 제법 정갈한 글씨가 적혀있다. 안에는 접힌 편지지 한 장이 들어있다.Dear. 문지기 해치를 닫고 있다고 했으니까 일종의 문지기가 맞지 않을까 싶어서 바꿔봤어요. 구름들끼리 점점 가까워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네요, 구름 사이 볕. 맞다, 안부 인사를 먼저 쓰려고 했는데 받는 사람을 쓰고나니 생각난 게 있어서 그거 먼저 적었어요. 하지만 격식차리지 않은 편지란 건 원래 이런 식으로도 오가니까 상관 없지 않을까 싶어요. 내 무례에 대한 변명으로 봐줬으면 좋겠습니다. 미시는 편한대로 하세요. 우주 전체에 미시 혼자 남았다면 해치는 왜 닫는건가요? 그걸 닫으면 어떻게 되는데요? p.s. 나는 어린이와 청년 사이에 있고, 궁사가 꿈이었어요. 지금은 파티시에를 생각중이고요. 그런데 우주 탐색도..
봉투 한구석에 ‘늦어져서 미안해요. 그런데 이 편지가 “늦는” 일이 있을까요?’ 라는 글이 적혀있다.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길게 두 번 접힌 편지지가 든 봉투. 두툼하다. 이전의 편지가 함께 들어있다. 여전한 악필. Dear. 침대 여행자 침대 여행자가 아니라는 것까진 알았지만 이게 귀여우니까 이렇게 쓸게요. 미시! 저는 구름 사이 볕이 더 좋아요. 미시가 간편하고, 침대 여행자가 귀엽지만, 구름 사이 볕이라는 이름은 따스한 구석이 있잖아요. 어디부터 말해야 할지 잘 모르겠네요. 알 수 없는 편지가 오가고 있으니 무슨 말이 오더라도 그러려니 할 수 있겠지만, 사실 지금은 이게 다 내 가족들의 연극이 아닌가 싶어요. 지인은 가족입니다. 친구들도 오긴 하는데 편지 발견은 늘 가족들이 하니까 합당한 의심이죠?..
매끈한 흰 편지지가 길게 두 번 접혀 봉투 안에 들어있다. 봉투에는 ‘비밀 편지’라는 제목이 제법 정갈하게 적혔다. 악필이다. Dear. 침대 여행자 이런 침대에는 밑이 있어요. (네모들이 아무렇게나 뭉쳐 다리 달린 침대같은 모양을 한 그림.) 요정이 아니라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인가요? (이런 질문 해서 미안해요. 여긴 병원이거든요.) 여행은 어디로 갔었는데요? 여전히 종이가 없다면 이 문장부터는 먹칠을 하거나 지워서 회신 바랍니다. 내가 눈이 아직 안 보여서 지인이 당신 쪽지를 읽어주고 있거든요. 내것도 덩달아 보게 되고요. 내가 쓴 첫번째 쪽지를 보고 아주 기함을 토하더니 침대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사람한테 외출 금지 처방을 내렸어요. 내 정신 상태도 엄청 걱정하고요. 그래서 이렇게 편지 친구가 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