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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차/바스티온 M. 핸즈

고장난 라디오

윤라우 2022. 6. 30. 00:17

네가 아니라 나.





내가 너더러 동생 닮았다는 이야기 한 적 있던가.

 대화는 그렇게 뜬금없이 시작된다. 상대는 잠들어있으니 독백이라고 하는 게 맞긴 했다. 펜촉이 잉크병에 퐁, 담겼다 나왔다. 망설임없던 손짓 치고 허공에 떠있는 시간이 길다. 잉크가 방울져 떨어져내리기 전에 펜촉이 다시 병 안으로 들어갔다. 끝을 다듬어 방울지지 않을 정도로 덜어내고서도 침묵은 길다. 탁, 그는 가볍게 손끝을 튕긴다. 스치는 정도라 작고 탁한 소리가 난다. 반쯤 책상을 향했던 몸을 다시 튼다. 등받이에 턱을 걸친 불량한 자세이나 당신이라면 이걸 더 좋아했을지도 모른다.
 구석에 콕 박힌 몸. 웅크린 모양새. 그는 어렵지 않게 어느 여름날의 구석방을 떠올린다. 안그래도 작은 몸이 더 작게 구겨들던 시간들. 그 애는 인간의 몸으로 귀신을 피해 거기로 숨어들었는데 너는 인간을 피해 유령같은 몸으로 그렇게 박혀든다.

 

아마도 에코를 봐서 더 그런 것 같다. 그 애는 어릴 때 몸이 좀 약했거든.

 

 지금은 괜찮아. 듣고있다면 하지 않을 변명이 따라붙는다. 다 마른 펜촉 끝이 까딱인다. 발치는 튼 자국 사라질 일 없고 그런 자국 하나도 없는 가녀린 몸을 지나면 다시 온통 잔상처 머물렀던 흔적인 손이다. 아무렇게나 뻗친 머리까지, 너는 말단이 온통 이리저리 휘둘리는 갈대처럼 그렇다. 나란히 서 있으면 자세부터 다를 것을 안다. 그런데 이봐, 꼬마야. 갈대는 뿌리라도 깊게 박지 너는 기어코 물 위를 떠가고 뭍 위를 헤맬거면서.

그렇게 마구 떠나버릴 것처럼 굴면 나는 별 수 없이 그런 것들을 생각해.

 

 흰 옷자락으로 묘사되는 것들. 서늘한 바람과 기온으로 설명되는 것들. 시야 곁가에만 존재하고 슬그머니 움직이는 것들. 나는 단 한번도 본 적 없고 볼 일 없을, 너는 남기지 않을 과거의 잔재들. 귀신은 너무 험한 것 같으니 그럼 유령이라고.

닻도 없이 돌아다니는 녀석에게 육지에 놓인 닻이 대체 무슨 소용이겠느냐고,

 탁, 등받이에 닿은 펜대가 앓는 소리를 낸다. 그 정도로 금 가지 않을 것을 알아, 어쩌면 금 가더라도 상관 없는 것처럼 그는 쉽게 몸을 튼다. 온전히 바다에 속한 사람들에게는 닻이라도 될 수 있겠지만 그게 네게 다 무슨 소용이겠나. 쌓인 편지 꾸러미를 뒤적인다. 발신인은 하나도 적히지 않고 발신인도 내용이 길어짐에 따라 겨우 제대로 적힌 것. 알아채지 못하면 그걸로 됐어, 그런 말이나 하며 부쳤을텐가. 손 끝에 닿는 종이에 깊게 베인대도 그걸 네 흔적이라고는 생각 못하겠지.

그러니 닿아도 더 비현실적인 녀석에게 하사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무게를 느끼고 말았느냐고....

 그러니 그 치가 너와 연관된 모든 것에 지레 겁을 집어먹는 것도 아주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나는 언제고 사람을 떠나보내는 것에 익숙하고 익숙하려 하기 때문에, 그는 그들을 다시 제 옆에 앉히려고 하기 때문에, 딱 그 결과만이 다를 뿐이지 겁 먹는 것만은 온전히 이해할 수 있어서. 너 이상해. 그런대도 뭐, 부정이나 하겠나. 바스티온 핸즈가 어떤 고무공을 이해하지 못할 것과 같은 이치로 그 고무공도 움직이지 않는 닻을 이해하지 못할텐데. 수그리는 고개 따라 고정하지 않은 머리가 흩어진다.
 그러다가 그는 다시 탁, 손가락 스친다. 파득 고개 한 번 턴다. 일련의 동작에 소리는 거의 없다. 왼 팔뚝을 쥐었다가 담요를 끌러낸다. 손짓은 거침없고 의자 끄는 소리 내지 않으려 일어나는 몸짓은 조심스럽다. 엮이지 않으려는 것이 나쁜 습관임을 안다. 고치는 데에는 네가 불안하게 부유하지 않게 되는 것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도 알아 급하지 않으려 한다. 그게 지척에서 불시에 눈 마주하고도 주춤 물러서지 않는 이유고, 채근에 별 말 없이 펜촉이 다시 편지지 위를 스치는 이유다.



있지, 라디오 고장난 거 아니야? 자꾸 탁, 탁 하는 소리 나.
이 방엔 라디오 없다. 헛 걸 들었나?
...거짓말.
아니면 꿈 꿨나보지. 자, 답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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