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ncero

한여름밤의, 본문

1차/바스티온 M. 핸즈

한여름밤의,

윤라우 2022. 6. 29. 22:30

오빠, 오빠. 자? 바스티온, 자냐구. 오빠, 진짜 자? 오빠아.

 

말 끝이 늘어진다. 문 밖에서 발 구르는 소리가 조금 더 급해지고나서야 바스티온은 몸을 일으켰다. 발에 걸려 늘어지는 이불을 걷어내고 바닥으로 꺼질 것 같은 몸을 걸음마다 끌어올리며 문을 연다. 허리에나 겨우 오는 다섯살짜리 꼬마애가 이렇게 올려다봤다. 꼭 붙드는 손에 팔 한 짝을 내어주곤 작은 머리통을 끌어안는다. 새는 하품을 숨보다 짧게 끊었다.

 

잠이 안 와?

....

들어와서 잘래?

 

오빠 방 더러워서 싫어. 조막만한 입으로 아주 또박또박. 그럼 내려가자. 발치에 걸리던 이불 말고는 아무것도 없이 말끔한 바닥을 그는 언급도 하지 않는다. 작고 따끈한 손은 쉽게 쥐여주지도 않는다. 손보다는 팔뚝이나 그 옷자락 쯤이 더 좋은 모양이었다. 습한 날씨에 나무며 못이 끼익끼익 우는 소리를 냈고 어린 애는 그 때마다 서둘러 집게손가락을 제 입가에 갖다댄다. 쉿, 쉬잇! 소리도 내지 않으면서 손아귀 힘은 꾹꾹 준다. 셋, 넷, 다섯.... 여섯, 이 계단에서 매번 휘청이곤 하는 애를 바로 세우고 다시 걸음을 딛는다. 바스티온은 항상 이 즈음에 완전히 깬다. 시계를 보지 않아도 시간을 안다. 4시 언저리나 되었을 것이다. 새벽에 카운터를 지키는 고용인 하나, 아직까지 밤을 지새며 이야기가 깊어진 무리 하나, 이르게 움직이기 위해 1층으로 내려온 사람이 또 두엇 쯤. 모두 기척 없이 움직인다. 그런 시간이다.

 

또 깼어?

네에.

 

바보 멍청이야. 퍽퍽, 윗팔뚝을 내리치는 주먹이 꽤 매섭다. 아프진 않다. 쉿, 쉬잇. 딴에는 제 오라비에게만 보이게끔 손짓하지만 녹록지 않다. 카운터 너머에서 뻗어온 손을 슥 피한다. 산발한 머리는 다듬어지지도 못하고 바스티온 뒤로 모습을 감춘다.

 

담요 줄까?

아, 아니요. 감사합니다. 안쪽에 있으니까 그거 쓸게요.

고생 많아~ 착하다.

 

바스티온은 쉽게 머리를 내준다. 등 뒤에서 팔 잡아당기는 손길도 고스란히 느낀다. 청년의 웃음소리를 뒤로하고 애들은 부엌보다 안쪽 방으로 들어선다. 문 양쪽에 침대같은 턱 두 개가 있고 그것으로 끝이니 방이라고 하기에는 어폐가 있다. 몸 뉘일 공간이라고 하는 게 맞겠다. 안쪽이 온통 밝도록 불을 켜두고, 지나온 곳들을 가리킨다. 그 때까지도 어린 몸은 빈틈 없이 찰싹 붙어있다.

 

불 끌게?

안 돼!

불 다 켜고 자면 아버지가 화내셔.

안! 돼!

저번에도 혼났잖아.

안된다니까!! 바보야!

 

잡은 팔을 위아래로 마구 흔든다. 이리저리 황망하게 발 딛는다. 바스티온은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어차피 문을 열 때부터 이렇게 될거란 건 알고 있었다. 같이 혼나 줄 생각도 있었다. 오늘은 좀 다를까 싶어 물어봤을 뿐이다. 여기보단 방이 편할텐데. 습관처럼 중얼이며 누운 몸 위로도 담요 한 겹 덮어준다. 기어코 밝은 쪽으로 머리를 두고 그늘지지 않는 옆에 오라비 앉히고서야 그 애는 몸을 웅크린다. 바보야. 한 번 더 말한다. 그런 매도에 부정도 않는 게 바스티온의 장점이자 단점으로 꼽히곤 했다.

 

습하다. 물 쓰는 곳을 지나온터라 눅눅한 공기가 농도짙다. 동생이 손을 잡지 않아 다행이다. 가만히 있어도 덥다. 좁은 공간에 사람이 둘이나 들어있어서 그럴 것이다. 호흡 한 번 들이쉬면 숨 쉬는 것보다는 물 마시는 것 같은 감각이 든다. 어린 아이들은 체온이 높기도 하다. 무게 없는 이불에 둘둘 말린 기분을 느끼며 앉아있다가, 꾸벅꾸벅 졸았다. 고개가 한 번 쯤 돌았나, 팔 당기는 손짓에 눈꺼풀을 들어올린다. 의지로 잠을 이겨내곤 했으니 그런 것만은 어릴 때부터 유구했거나.

 

오빠, 자?

일어났어.

자면 안 돼. 좀만 더 깨있어.

 

작은 몸이 딱 붙어 눕는다. 덥고 따끈따끈하다. 물질에 지친 몸뚱이가 벽에 붙어 기댄다. 하루종일 찬 물과 막노동에 들어담겼다 오면 더운 날에도 이런 열기가 고프곤 했다. 응, 안 자. 늘어지는 목소리를 모를 리 없다. 느른하게 뜬 눈이 담요 덮은 몸뚱이를 스쳐 바닥으로 떨어진다. 동생이 불편하게 발 뒤채는 걸 본다. 꾹 감았다가 억지로 떠올린다.

 

아파?

아까 계단에서.... 아냐.

계단에서 왜. 삐었어?

...응. 호 해줘.

 

그래?... 졸린 머리로 느릿느릿 움직인다. 바닥에 털썩 앉아선 호오, 부는 시늉이나마 하고 삐죽 나온 발목을 조심조심 주무른다. 많이 아파? 그 애는 고개를 젓는다. 바보야. 오빤 평생 이럴 일 없어서 좋겠다. 옷자락을 꾹 쥔다. 잡으면 안마하기 힘들어. 하지만 한 손으로도 능숙하다. 주물주물 하다보면 발 끝까지 따끈하다. 피가 안 돌았나 싶다. 피식피식 웃는다.

 

이럴 때 몸 시원하면 귀신 붙은거라던데.

맞아. 오빠가 쫓아냈어. 인제 자.

 

그 애가 홀가분하게 말하기에 문득 고개 든다. 아무말도 않은 것 같은 얼굴로 제 옆자리를 두드린다. 시키는대로 옆자리에 올라앉아 넓지 않은 자리에 떨어지지 않도록 작은 몸 끌어안는다. 맞아. 오빠가 쫓아냈어. 새벽 내도록 중에 그나마 가장 큰 목소리를 떠올린다. 따끈한 몸뚱이가 저절로 수마를 끌어온다. 까무룩 빠져들었다가 깨어나면 그 애는 벌써 품속을 빠져나가 온 사방을 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에 아무것도 묻지 못하고 이내 잊는다. 새벽 내내 불 켜놓고 있지 말라고 혼날 때 잠깐 떠올랐다가, 다시 놓친다.

 

그리고 어느 날 밤에, 바람소리도 새소리도 들리지 않을 정도로 아주 고요할 때에.

그 목소리는 문득 떠오른다. 오빠 방 더러워서 싫어.

'1차 > 바스티온 M. 핸즈'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제  (0) 2022.07.04
고장난 라디오  (0) 2022.06.30
백업1  (0) 2022.05.18
어때, 한 곡?  (0) 2022.05.18
철옹성  (0) 2022.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