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밀 편지

매끈한 흰 편지지가 길게 두 번 접혀 봉투 안에 들어있다.
봉투에는 ‘비밀 편지’라는 제목이 제법 정갈하게 적혔다. 악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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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ar. 침대 여행자

이런 침대에는 밑이 있어요. (네모들이 아무렇게나 뭉쳐 다리 달린 침대같은 모양을 한 그림.) 요정이 아니라면 구천을 떠도는 귀신인가요? (이런 질문 해서 미안해요. 여긴 병원이거든요.) 여행은 어디로 갔었는데요?

여전히 종이가 없다면 이 문장부터는 먹칠을 하거나 지워서 회신 바랍니다. 내가 눈이 아직 안 보여서 지인이 당신 쪽지를 읽어주고 있거든요. 내것도 덩달아 보게 되고요. 내가 쓴 첫번째 쪽지를 보고 아주 기함을 토하더니 침대 밖으로 나갈 수도 없는 사람한테 외출 금지 처방을 내렸어요. 내 정신 상태도 엄청 걱정하고요. 그래서 이렇게 편지 친구가 생긴 게 신기하고 좋네요. 귀신이라도 또 편지할테니 답장 주세요.

p.s. 그래도 내일이나 모레 쯤 부터는 볼 수 있을지도 몰라요. 미리 걱정 고맙습니다. :D
p.s. 2 종이도 없는데 펜은 왜 수집한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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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어질수록 줄이 점점 오른쪽 아래로 쳐지며 부분부분 겹쳐있다.
악필도 더 심해진다.